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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및 정보/오대산 전국 학생 미술 공모전

제20회 오대산 전국 학생 백일장 심사평

by 문수청소년회 2023. 9. 27.

20회 오대산 전국 학생 백일장 대회 심사평

 

김정남(가톨릭관동대 교수)

 

 

전통적인 방식의 읽기-쓰기는 학생들의 일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문해력은 디지털 리터러시로 그 특성이 변모했고 학생들의 언어생활도 SNS를 중심으로 한 평면적인 연결의 과정을 매개할 뿐이다. 시대가 이렇게 급변했음에도 지금도 책은 중요한 지식의 원천이며 글쓰기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들에겐 마이동풍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궁금한 게 있으면 chatGPT에 물어보고, 그것도 읽기 귀찮아서 유튜브를 검색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매체환경에서 백일장이 열리고 이에 전국에 수백 명의 학생이 자신이 쓴 글을 응모한다는 것은 희귀한 장면이면서도, 글쓰기라는 문화적 도구에 아직도 뭔가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뒷심의 증거이기도 하다. 202320회를 맞는 오대산 전국 학생 백일장 대회는 시 284, 산문 300, 도합 584편의 응모작이 답지하였는데, 700여 편이 응모된 작년의 상황에 비해 다소 응모 편수가 줄었지만, 급변하는 매체 환경을 고려했을 때 이는 결코 적은 편수가 아니며 작품의 수준에 있어서도 예년에 견주어 모자랄 것이 없었다.

기성의 사고에 때 묻지 않은 초등부 학생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심사위원의 탄복을 자아내게 했다는 점은, 매년 경험하는 것이지만 거듭 기록해 두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등부의 글로 옮겨가면 이러한 참신함은 급감하고 상투적인 사고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등부의 글은 문체나 묘사력 등에 있어서는 나름의 문장을 구사하고 있으나 작위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글제를 자신의 삶 속에 녹여 진정성 있게 이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단순한 글재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보다 깊은 시선을 확보할 수 있는 경험이 누적되어야 할 것이다.

본 대회의 글제는 시계/방학(초저), 편지/주말(초고), /택배(중등), 연꽃/(고등)이었다. 우선 대상인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고등부 시 손끝은 연꽃을 소재로 진흙 속 솟아있는 줄기굵은 손가락에 비유하여 자연사와 인간사의 유비적 관계를 통해 생의 의미를 건져 올렸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식물의 씨앗이 그렇듯이 얼굴 없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피투(彼投)라는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문제와 더불어, 그 끝에 매달린 농익은 굳은살로 상징되는 사심 없는 사랑의 의미까지 놓치지 않고 있어 짭짤한 맛이 나는 생의 꽃향기를 웅숭깊게 형상화하였다.

한편 월정사주지상을 수상한 고등부 산문 은 운동화끈이라는 소재를 통해 친구 사이의 우정과 이를 둘러싼 유행이라는 사회적 상황, 더 나아가 이러한 경험을 통한 의식의 성장을 단정한 문체로 표현하였다. 같은 상을 수상한 초등 저학년 방학 동안은 방학을 소재로 엄마가 동생을 낳으려고 해서재미없는 방학이 될 줄 알았던 화자가, 이런 자신을 위해 아빠가 보드게임은 물론 자전거도 태워주고 핸드폰 게임까지도 하게 해 주어 의외로 행복한 방학이 되었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방학이 끝났을 때 아빠가 조금 늙어 있었다는 대목은 어린이의 순정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며 반전의 의미를 살려주고 있다. 더욱이 이 모든 전개를 적절한 행갈이와 연갈이를 통해 리듬과 여백의 의미를 더해 주고 있어 동시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동국대총장상을 차지한 고등부 산문 은 대입을 위해 입시곡(쇼팽의 에튀드)을 연습하는 화자의 내적 고뇌와 이를 묵묵히 지켜보며 서울에 갈지도 모를 손주를 위해 스웨터를 뜨는 할머니 사이의 갈등을 간결하게 풀어내면서 끊어질 수 없는 서로 간의 사랑의 의미를 진솔하게 그려냈다. 더불어 강원도지사상을 수상한 고등부 산문 배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글제인 끈을 소재로, 바닷가에서 태어나 낚시를 배우며 심지어 가업까지 물려받아야 하는 처지의 젊은 화자를 등장시켜, 로컬에 대한 청년의 양가적 감정을 잔잔하게 표현하였다. 화자는 아버지의 권유로 솜사탕 장사를 하게 된 동수 아저씨를 바라보며 자신은 과연 고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고, 줄지어 있는 아이들 같은 배들 가운데 묶여 있지는 않지만 같은 곳에 머물러 있는 한 척의 배를 바라보면서 아직 새로운 꿈의 지도를 펼치고 대양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청춘의 시간을 유추해 내고 있다.

더 많은 수상작품들에 대해 단평으로나마 그 의미를 보듬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 줄인다. 앞으로 다가올 문명의 시간이 기계화된 포스트 휴먼의 상황으로 우리를 이끈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는 여전히 읽기-쓰기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비판적이고도 창의적인 리터러시가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것을 읽고 알고 있다는 chatGPT는 사실 복제 능력만을 지닌 헛똑똑이다. 이에 대한 기본값(default value)을 부여하는 몫은 여전히 인간의 인문적 성찰에 있을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길 위에서 쉼 없이 자신을 벼려갈 수상자 여러분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더 큰 미래를 향해 달려갈 낙선자들에게도 이 고배가 와신상담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심재상(심사위원장), 김창균, 김남극, 배수연, 김정남(김겸)

 

백일장 심사 중인 심사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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